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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연혁/지명유래

포천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포천은 원래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일 때 고구려에서는
마홀군(馬忽郡 一名 命旨郡)이라 불렀습니다. 신라의 진흥왕 때에 견성군(堅城郡)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때에 다시 청성(靑城)이라 불렀습니다. 고려초에 와서 포주(抱州)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다시
조선조에 포천(抱川)이라는 오늘의 땅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연혁

  • 2000년대
    • 2003년
      • 도농복합시로 승격,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
      • 행정구역은 14개 읍·면·동(1읍, 11면, 2동)으로 구성(대통령령6928호)
  • 1900년대
    • 1914년

      3월 영평군이 포천군에 편입

    • 1973년
      • 행정구역개편, 포천면 탑동리가 양주군 동두천읍으로 분리
      • 12개면(1개출장소)87개리로 구획(대통령령 6452호)
    • 1983년
      • 청산면이 연천군으로 연천군 관인면이 포천군으로 편입,
      • 행정구역은 13개(2읍 11면) 88개리로 구성(대통령령110027호)
  • 과거
    • 고구려시대

      마홀군(馬忽郡)

    • 신라시대

      신라의 진흥왕, 견성군(堅城郡)

    •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청성(靑城)군

    • 고려시대

      태조23년(940)포주, 성종14년(995)포천군, 고려8대 현종 양광도 양주군으로 이속

    • 조선시대

      조선제3대 태종(1413), 포천현

지명유래

  • 포천

    포천을 고구려 시대에는 마흘(馬忽)이라 하였는데 마흘에 대하여「삼지연(三地硏)」에서는 물골[水城] 즉 ‘물이 많은 골(谷)’이란 뜻의 ‘몰골’을 음차(音借)한 것이라고 하였다. 골 마(馬)는 물의 옛말 ‘물’ 또 이것의 옛말 ‘매’를 음차한 것이고, 흘(忽)은 ‘골’을 음차하여 썼다는 것이고, 견성(堅城)은 통일신라시대 때 성을 튼튼하게 수축하고 공수(攻守)의 거점으로 삼았다는 연유로 명명하였으며, 청화(淸化)라 한 것은 고려 성종이 정한 별호라고 한다. 지금의 포천이라는 명칭은 물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없고 외부로 흘러 나가기만 한다고 하여 안을 포(抱), 내 천(川)으로 이름하였다.

  • 소흘읍

    소흘읍이라 한 것은 소(蘇)자는 풀이름으로 차조기 소, 나무 이름으로는 소나무 소로 풀이 되고 흘(屹)은 산 우뚝할 흘 즉 산이 높다는 뜻이다. 주위에는 산이 많으며 나무와 풀이 무성하였던 이유로 소흘읍이라 부른 것이라고 한다.

  • 군내면

    군내면은 현 구읍리에 조선시대 포천현아(抱川縣衙)가 있어 현내면(縣內面)이라 부르던 곳으로, 1905년 포천군청이 현 포천읍으로 이전됨에 따라 면이름을 군내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 내촌면

    본래 죽엽산 안쪽이 되므로 내동면(內洞面)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內洞)의 內자와 동촌(東村)의 村자를 따서 내촌면이라 하였다.

  • 가산면

    화산(花山)이 있으므로 화산면이라 하였다. (加山面)이라 부르게 된 까닭은 청량면의 3개리를 화산면에 더하여(加)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 신북면

    신북면은 조선시대에는 포천현 내북면(內北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북면(外北面)을 통합하여 신북면이라 개칭하였다.

  • 창수면

    창수면이라는 명칭은 남면에 서면과 하리면을 병합하면서 영평천의 푸르고 맑은 물이 면의 중앙인 창옥병(蒼玉屛) 연안으로 흐른다고 하여 명명되었다.

  • 영중면

    영중면이란 명칭은 포천군에 병합될 때 영평군의 중앙에 위치하여 영중면이라 이름하였다.

  • 일동면

    일동면은 조선시대 영평현에 소속되어 동면(東面)으로 불리어 오다가 1895년 (고종 32) 영평현이 포천군에 병합되면서 동면을 둘로 나누어 포천군 일동면으로 되었다.

  • 이동면

    이동면은 조선시대 영평현에 소속되어 동면(東面)이라 부르던 곳으로 1895년(고종 32) 영평현이 포천군에 병합되면서 동면을 둘로 나누어 포천군 이동면이 되었다.

  • 영북면

    영북이란 명칭은 영평현 북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북면이라 하였고 포천군에 편입하면서 영평군의 긴 도로를 지나 제일 북쪽에 있다는 복합적인 연유로 영북면이라 하였다.

  • 관인면

    신라말 궁예의 학정에 못이겨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성밖인 이 지역에 모여 살았다고 하여 이 곳의 명칭이 관인면으로 불리었다고 전해진다.

  • 화현면

    화현면은 조선시대 포천현의 동촌면(東村面)이라 부르던 곳으로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027호에 의하여 내촌면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되고 화현, 지현, 명덕 3개 리를 관할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 포천동

    조선조중엽에는 서면이라 칭하였으며 군청이 군내면 구읍리로부터 신읍리로 이전 후 서면 사무소도 신읍리로 이주되었고 1937년 서면을 포천면이라 개칭되었다가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로 포천읍으로 승격되었고 2003년 10월 19일 포천시 승격으로 2개동으로 분리되면서 신읍리와 어룡리가 포천동으로 구획되었다.

  • 선단동

    조선조중엽에는 서면이라 칭하였으며 군청이 군내면 구읍리로부터 신읍리로 이전 후 서면 사무소도 신읍리로 이주되었고 1937년 서면을 포천면이라 개칭되었다가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로 포천읍으로 승격되었고 2003년 10월 19일 포천시 승격으로 2개동으로 분리되면서 자작리, 선단리, 동교리, 설운리가 선단동으로 구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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