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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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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지명유래를 소개해드립니다.

연혁

  • 1912년 행정구역으로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이다. 죽엽산 아래이므로 쇠재 또는 철현, 금현이라 하였으며 또한 고려 말에 이성계의 둘째 부인 강씨(신덕왕후)가 이곳에서 살았으므로 궁말 또는 궁촌, 궁동이라 하였다. 1914년 지방행정 구역 개편 때 신촌리, 광촌리의 전역과 서원리, 궁촌리, 추곡리, 용화동의 각 일부와 청량면의 마전리, 우금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현리라 하고 가산면에 편입하였다.

지명 유래

마을

너배기, 광촌동
  • 궁말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 선조 때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선생의 조부인 이예신이라는 분이 넓은 들에 자손이 많이 번창하라는 뜻으로 이 마을을 너배기라 하였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 한자로 광촌동으로도 부른다.
대대울, 죽곡동
  • 궁말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강원도 통천에 살던 김씨라는 분이 이곳에 옮겨와 살았다. 처음에는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실망하였으나 살다보니 푸른 산 맑은 물이 마음에 들어 계속 살게 되었다고 한다. 14대 후손까지 대대로 살고 있어서 대대울이라 부른다고 한다. 대대울을 대나무에 비유하여 죽곡동으로도 부른다.
돌모루, 신촌
  • 너배기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고려 말경 아산 이씨가 처음으로 정착한 마을이라고 한다. 이 마을이 산을 돌아가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는 마을 입구에 갓모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아산 이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신촌은 돌모루 마을과 듬방이 마을로 나뉘어 진다.
고인돌
  • 돌모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매우 큰 고인돌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되었다. 이 지석묘는 평지에 조성된 북방식 탁자형 지석묘로 매우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듬방이, 듬뱅이
  • 돌모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병자호란 때 이 마을에 호병이 주둔했다고 하여 둔병이라고 했다고 하나 세월이 흐르면서 변음 된 지명이다.
벌말
  • 대대울 옆에 있는 마을이다. 벌판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
  • 궁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랫너배기
  • 너배기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아래쪽 너배기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웃너배기
  • 너배기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위쪽 너배기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궁말
  • 너배기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강씨가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듬방이고래
  • 듬방이 앞에 있는 논들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앞고래
  • 궁말 앞에 있는 들이다. 마을 앞에 있는 들이어서 앞고래가 되었다고 한다.
왜골
  • 궁말 서쪽에 있는 고래논 고래이다. 일본 사람이 큰 연못을 파고 관개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골
  • 대대울 남쪽에 있는 고래논 고래이다.
초당자리
  • 대대울 앞에 있는 들이다. 옛날에 초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새논고래
  • 고인돌 서쪽에 있는 들이다. 황새가 많이 모였다고 하여 황새논고래가 되었다.

검은돌
  • 대대울 북쪽에 있는 고래논 골짜기이다. 검은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봉재
  • 너배기 서북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옛날에 매를 날려 사냥을 하던 곳이어서 매봉재가 되었다.
능안, 산수안
  • 너배기 동쪽에 있는 산이다.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 선생의 묘가 있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마르마터
  • 돌모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불당골
  • 대대울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불당이 있었다고 하여 불당골이 되었다.
서낭댕이
  • 대대울에 있는 산이다. 서낭당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송장골
  • 듬방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송씨 장군의 묘가 있다. 송장군골의 뜻으로 송장골이 되었다고 한다.
큰골
  • 절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가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돼지우물배기
  • 궁말 남쪽 죽엽산이다. 이 산에 돼지가 먹는 우물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절터골
  • 궁말 남쪽에 있는 산기슭이다. 옛날에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개울, 보

배개울
  • 오성교 북쪽에 있는 개울이다.
앞개울
  • 고인돌 앞에 있는 개울이다. 마을 앞에 있기 때문에 앞개울이 되었다고 한다.

기타

괸돌다리
  • 고인돌에서 신촌으로 건너가는 다리이다. 고인돌 앞에 있는 다리이어서 마을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너배기연못
  • 너배기 앞에 있는 못이다. 너배기 마을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연꽃이 많이 피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능안고개
  • 너배기에서 마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능안에 있는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모루고개
  • 돌모루에서 듬방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돌모루에서 넘는 고개라고 하여 돌모루고개가 되었다.
듬방이고개, 시마치고개
  • 고인돌에서 듬방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듬방이로 넘어가는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아개
  • 배개울 중앙에 있는 바위이다.
병목골고개, 병사고개
  • 신촌에서 마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처음에는 넓고 점점 좁아지는 모양이 병목을 닮았다고 하여 병목고개가 되었으며 또한 웅천현감, 제주판관, 양산군수를 지내신 유경선 선생의 묘가 있어서 병사고개라고 한다. 흔히 유경선 선생의 묘를 병사공묘라 부르고 있다.
오성교
  • 너배기에서 추곡으로 건너가는 다리로 1971년에 놓았다고 한다.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 선생의 묘 부근에 있어서 오성부원군의 칭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육형제바위
  • 방아개 옆에 있는 바위이다. 여섯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넉고개
  • 궁말에서 진목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넉고개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다. 큰넉고개 보다는 작다고 하여 작은넉고개가 되었다.
중의 응뎅이
  • 고인돌 서북쪽 황새논 고래에 있는 웅덩이이다. 옛날에 중이 항상 빨래를 하고 또한 물을 길어갔다고 하여 중의 응뎅이가 되었다.
구렁메기턱
  • 궁말에서 용화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구렁텅이가 깊고 뱀처럼 구불구불하여 구렁메기턱이 되었다고 한다.

지명 유래 제보자: 이창규, 유충열, 성선경, 조숙구, 이상근, 이영우, 이병오, 이용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