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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소개

연혁 및 유래

시민과 함께하는 포천시 - 홈페이지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고장의 연혁 및 유래를 소개해드립니다.

우리고장의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연혁과 지리적 특성을 안내해드립니다.

연혁

선단동 이미지
  • 조선조 중엽 포천현 서면 (면사무소 : 자작리)
  • 1905년 : 군청이 군내면 구읍리로부터 현 신읍리로 이전
  • 1905년 : 서면 사무소 → 현 신읍리(장거리)로 이전
  • 1937년 :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천면이라 개칭
  • 1973년 7월 : 포천면 탑동리 → 동두천읍에 이속
  • 1979년 5월 : 포천읍 승격(대통령령 제9409호)
  • 1988년 4월 : 포천읍청사 신축이전(현재 포천동사무소)
  • 2003년 10월 19일 : 시 승격으로 포천읍이 2개동(포천동, 선단동)으로 분리
  • 2003년 10월 20일 : 선단동주민센터 개청
  • 2006년 3월 28일 : 선단동주민센터 이전(포천시 선단동 631번지)
  • 2006년 7월 31일 : 선단동 주민자치센터 개소

지역특성

  • 안보 요충지 : 6군단사령부, 6공병여단, 15항공단 등 위치
  • 지역경제 중심지 : 대진테크노파크 등 산학연구단지 유치
  • 경기북부의 유일한 대학도시 : 대진대학교, 차의과학대학교 등 위치

유래

자작동(自作洞)

1912년 행정구역으로 포천군 서면(西面) 자작리(自作里)이다. 왕방산 아래가 되므로 자재기라 하였다. 1914년 지방행정 구역 개편 때 서면(西面), 선단리(仙壇里) 일부와 청량면(淸凉面)의 유교리(柳橋里) 일부를 병합하여 자작리(自作里)라 하였다. 문화류씨(文化柳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스스로 마을을 만들었다고 하여 자작리가 되었다고 한다. 1937년 서면(西面)이 포천면(抱川面)으로 개칭되어 그 관할이 되었고 1979년 포천읍이 읍(邑)으로 승격되어 포천읍 관할이 되었다. 2003년 포천군이 시로 승격되어 포천읍이 2개 행정동으로 분등되면서 자작동이 되어 선단동(仙壇洞) 관할이 되었다.

마을
파발막(擺撥幕)

자재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파발이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군단앞(軍團앞)

파발막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군부대(6군단 사령부)가 주둔하면서부터 생긴 이름이다.

너러바위

자작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너러바위 즉 넓은 바위가 쭉 깔려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동네, 안말

자재기 북쪽에 있는 마을로 현재 자작 1통인데 지역적으로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정자동

자재기 남서쪽으로 현재 기도원이 있는 마을이다.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벌말

자재기 동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다.

대장의터

자재기 북쪽에 있는 들로 옛날에 장군이 살았다고 하여 대장의 터로 불렸다고 한다.

돌다리논

돌다리 옆에 있는 논들이다. 돌다리 옆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배미개

옥당거리 남쪽에 있는 들이다.

구석돌이, 비행장들

군단 앞 남쪽에 있는 들로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지어 진 이름인대 지금은 군 비행장이 되어 비행장들이라 불려지고 있다.

두둑벌

첫째방죽, 둘째방죽, 셋째방죽을 수원으로 하는 그 밑의 논벌이다. 동네보다 논벌이 높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네골논

갓모배미 북쪽에 있는 논 고래이다. 모양이 길게 4골(갈래)로 되어있어서 네골논이 되었다고 한다.

굿골

자재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왕방산

자작리 뒤에 높고 길게 뻗은 산이다. 왕이 찾아 왔던 산이라하여 왕방산(王謗山)이 되었다고 하는데 여러 문헌에 왕방산(旺方山)으로 표기되고 있다.

미럭동

절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미륵이 있엇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무덤

자재기 서쪽 왕방산에 있는 산등성이다. 옛날 폭우로 천지개벽이 일어 날 때 배가 떠 내려와 묻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윗방아골

안장바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절골

자재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곰광새

자재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수리봉

왕방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매봉재

정자동 뒤 산봉우리이다. 옛날에 매사냥(매를 날려 사냥)을 하던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개울, 보
참새개울

자재기 북쪽에 있는 개울이다. 참새 떼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새보

유교교 위쪽에 있는 보이다. 새로 조성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타
갓모배미

안동네의 있는 논이다. 모양이 갓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첫째방죽, 둘째방죽, 셋째방죽

자재기 동북쪽에 있는 3개의 방죽으로 사유가 아니고 많은 논에 물을 대는 공동 수원이다. 큰 죽방이 3개이므로 첫째, 둘째, 셋째 방죽으로 부른다.

돌다리

파발막 동남쪽에 있는 다리이다. 돌로 놓은 다리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는 지명을 따서 유교교, 벌말다리라고 부르며, 6군단 앞에 위치하고 있어 군단 앞 다리라고도 부른다.

둑새논

자재기와 고인돌의 남쪽 구석돌이(비행장들)에 있는 논이다. 뿌리가 길기로 유명한 뚝새풀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둥그미논

안동네 동쪽에 있는 논으로 모양이 둥그미첨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먹먹바위

자재기 서쪽에 있는 바위로 네모 꼴로 갈라진 모양의 검은 바위이다. 바위 색깔에서 연유된 검다는 의미의 이름으로 생각된다.

상여바위

자재기 서북쪽 왕방산이 있는 바위이다. 상여 모양을 닯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새방죽

첫째 방죽 북서쪽의 대장이터에 있는 방죽이다. 새로 만든 방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낭당

파발막 북쪽에 있는 서낭당 터이다. 큰 참나무가 있었으나 참나무는 없어졌다.

안장바위

자재기 서북쪽에 있는 바위로 말 안장처럼 생겼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옥당거리

자재기 동남쪽에 있는 길이다. 옛날에 옥당(玉堂)이 있던 자리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방바위

자재기 서북쪽 왕방산에 있는 바위로 건물의 중방처럼 생긴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선단동(仙壇洞)

1912년 행정구역으로 포천군 서면(西面) 선단리(仙壇里)이다. 선단산 아래가 되므로 선단(仙壇)이라고 하였다. 1914년 지방행정 구역 개편 때 선단리(仙壇里)를 분할하여 설운리(雪雲里), 자작리(自作里)에 일부씩 넘겨주고 설운리(雪雲里) 일부를 병합하여 선단리(仙壇里)라 하였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산에 큰 바위가 있어 미신을 믿는 주민들이 이곳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신선이 내려온다고 믿어 이 산을 선단산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1937년 서면(西面)이 포천면(抱川面)으로 개칭되어 그 관할이 되었고 1979년 포천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어 포천읍(抱川邑) 관할이 되었다. 2003년 포천군이 시(市)로 승격되어 포천읍이 포천동(抱川洞)과 선단동(仙壇洞)으로 분등되면서 선단동(仙壇洞)이 되었고 행정동인 선단동(仙壇洞) 관할이 되었다.

마을
늪말, 너머할

바깥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 고래논에 늪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능안골

전계대원군 묘의 뒤쪽 마을이다. 대원군 묘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두릅골

정자말 위에 있는 마을로 두릅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모퉁이말

바깥말 옆에 있는 마을이다.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묘소, 묘소말

철종의 생긴 전계대원군의 묘가 있는 마을이다. 대원군의 묘를 쓰고부터 생긴 이름이다.

너은말, 바깥말

묘소 부락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샛말

묘소말과 바깥말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장승거리

바깥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함터

하촌 위의 산이었으나 현재는 마을이다. 전계대원군 묘자리에 원래 서씨 묘가 있었다고 한다. 전계대원군 묘를 쓰기 위하여 부득이 서씨 묘를 석함터로 이장할 때 땅 속에 석함이 뭍여 있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논틀건너마을

알매앞 논들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논들 건너에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아랫마을, 하촌(下村), 알매마을

선단동 소재지로 묘소부락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묘소부락 아래로 제일 낮은 위치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부락 앞에 있는 산이 새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알매가 되었다고도 한다.

정자동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어서 큰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마을에 큰 일거리가 있을 때는 나무 아래에서 온 동리 사람들이 모여 회의도 한다. 그래서 정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여 이 일대를 정자밭 또는 정자논이라 한다.

감장서들

수리바위 밑에 있는 들이다. 나무도 없이 까만 돌만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두들기

장승거리 북쪽에 있는 돌이다. 꽃이 많이 핀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매물고래논

늪말 앞에 있는 논들이다. 이 들에 매물이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버들개

장승거리 앞에 있는 들이다.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서낭댕이들

선단 남쪽에 있는 들이다.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세골논

너머말 앞에 있는 논들이다. 형태가 세 개의 골(갈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배나무뜰

장승거리 옆에 있는 들이다. 돌배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큰서들

재피골 옆에 있는 들이다. 큰 돌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알매앞논

하촌 앞 논 고래이다.

마근챙이

석함터 앞의 작은 들이다. 막다른 끝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살구논

장승거리 위에 있는 조그만 천수답 들이다. 천수답이어서 살구를 따먹을 때가 되어야 겨우 모를 낼 수 있는 논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상아들

아래말 위에 있는 고래논들이다.

가사봉

전계대원군 묘 뒤의 봉우리이다.

가재울

재피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가재가 노는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기바웃골

공기바위가 있는 골짜기이다. 공기바위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늘밭

큰서들 북쪽에 있는 산이다. 산이 넓고 편편하여 이붙여진 이름이다.

동굴재산

묘소말 동쪽에 있는 산이다. 모양이 둥그렇게 생겼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말궁댕이

말고개 동쪽에 있는 등성이이다. 말궁댕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시나무골

오리나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사시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리나무골

능안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리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재피골

늘밭 북쪽에 있는 아주 험한 골짜기이다. 옛날 어떤 재상이 피난하였다고하여 생긴 이름이다.

절터번댕이

선단리에 있는 골짜기이다. 절터가 남아있는 골짜기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큰골

정자말 북쪽 매봉재에 있는 큰 골짜기이다.

피난봉, 홍강새

수리바위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홍씨와 강씨가 피란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제당터

대진대학교 뒤편 산이다. 부락에서 산치성을 드리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송 3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2그루만 남았다.

비들기장

들바위 동북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비들기가 많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공터

대진대학교 본관 자리로 평평한 산기슭이다. 어린 아이들이 소나무로 만든 공을 치고 놀던 곳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형재봉

대진대학교 북쪽 위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나란히 형제처럼 다정하게 서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뒤주골, 두릿골

산골짜기로 쌀 뒤지 같이 쑥 들어간 모양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개두릅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개울, 보
너멋개울

앞개울 서쪽에 있는 개울이다. 위치적으로 너머 쪽에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앞개울

묘소말 앞에 있는 개울이다.

정자말개울

정자말 앞에 있는 개울이다.

선단천

묘소말 앞으로 흐르는 개울이다. 이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기타
공기바위

절터빈댕이 북쪽에 있는 바위로 공기 돌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굴아위, 박쥐골

선단 북쪽 왕방산이 있는 굴이다. 불을 때면 자작리에서 연기가 나온다고 하여며 박쥐가 많이 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귕바위

장독바위 옆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귕(쇠먹이 통)처럼 생겼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너러바위

묘소말 북쪽에 있는 넓은 바위이다. 넓은 바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들바위

선단 서북쪽에 높이 솟아있는 바위이다. 이 바위에서는 멀리 있는 들이 다 보인다고 하여 들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아들바위

뒤턱거리(설운리 소재) 위에 있는 바위이다. 돌을 던져 이 바위를 맞추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나무꾼이 쉬면서 돌을 던져 바위를 맞춰 보았다고 한다.

말고개

묘소말에서 정자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현재 대진대학교 정문 안쪽으로 말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로 생각된다.

배미끝

정자말 서쪽에 있는 부리이다.

분투골고개

정자말에서 늪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신(辛)씨가 묘가 집단(현재 약 200 기정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墳)터골고개가 변음된 것으로 생각된다.

안고개

정자말에서 묘소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안고개논

안고개 밑에 있는 논이다. 안고개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장바위

병풍바위 북쪽에 있는 바위로 바위 모양이 말 안장처럼 생겼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명북바위, 치성바위

묘소말 서북쪽에 있는 바위이다. 정성드리고 치성드리는 바위여서 명복(冥福)이 명북으로 변음된 것 같다.

장독바위

수리바위 밑으로 현재 대진대학교 학생회관 위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 모양이 장독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병풍바위

대진대학교 북쪽에 있는 바위이다. 병풍처럼 생겼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대답바위, 아궁바위

감장서들 위에 있는 바위이다. 산 밑에서 소리치면 바위에 메아리쳐 되돌아온다 하여 대답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안솔봉

피란봉 밑 병풍바위 위의 고개이다. 소나무가 우거져서 생긴 이름이다

어로길

장승거리에서 전계대원군 묘소까지의 길이다. 철종 임금님이 다니셨다고 하여 어로길 이라고 한다.

두부바위

들바위 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모양이 두부 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용물게

선단리 앞 개울과 한내천이 만나는 하천변에 위치한 배 처럼 생긴 연못이다. 옛날에 용이 이곳에서 목욕을 할 때 생긴 자국이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구렁다리

샘말 앞 개울에 있는 다리이다. 9번 굽으며 흐르는 개울의 생깁새가 용이 움직이는 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투마리밭

신배나무들의 밭이다. 모양이 베틀의 도투마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리바위

옛날 왕방산 일대가 홍수로 물에 잠기었을 때 배의 고리를 걸었다는 바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말무덤

말의 주인이 전쟁터에서 죽게되자 주인의 목을 물고 와서 죽었기 때문에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여 말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어원적으로 “말”+“무덤”으로 보면 말은 높은 곳이란 뜻으로 높은 곳에 있는 무덤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설운동(雪雲洞)

1912년 행정구역으로 포천군(抱川郡) 서면(西面) 설운리(雪雲里)이다. 설운산 아래가 되므로 설운리 또는 해룡(海龍)이라 하였다고 한다. 약 2,000년 전 큰 홍수가 났을 때 이곳 일대가 물에 잠겨 바다처럼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왕방산 마루에 배 말뚝이 있다. 이때 이 마을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고 하여 해룡마을이 되었다고도 한다. 또는 조선시대 포천현아(抱川懸衙)에서 삼십리 거리가 된다고 하여 서른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 서른리로 불리다가 설운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1914년 지방행정 구역 개편때 설운리(雪雲里) 일부를 선단리(仙壇洞)에 넘겨주고 선단리(仙壇洞) 일부를 병합하여 설운리(雪雲里)라 하였다. 1937년 서면(西面)이 포천면(抱川面)으로 개칭되어 그 관할이 되었고 1979년 포천면(抱川面)이 읍(邑)으로 승격되어 포천읍(抱川邑) 관할이 되었다. 2003년 포천군이 시(市)로 승격되어 포천읍(抱川邑)이 2개 행정동으로 분동되면서 설운동(雪雲洞)이 되어 선단동(仙壇洞) 관할이 되었다.

마을
해룡(海龍)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이무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하여 해룡이라 부르게 되었다.

기와골

해룡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기와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모래재

해룡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부락에서 장승거리로 넘는 고개에 흰 모래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청말(지청말)

약봉 서성 선생이 조상의 묘를 쓰기 위해 자리를 찾고 있는데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나 이상한 몸 짓으로 묘자리를 잡아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서씨 문중에서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제청(祭廳) 을 지은 후부터 제청말이 되었다고 한다.

상시막골

모래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약봉 서성 선생 묘제시 먼저 산신제를 모시던 곳이라 하여 상시동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오리골

해룡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리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진솔모루

기와골 동쪽, 솔마루(소홀읍 소재)아래에 있는 마을 이다. 큰 소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점말

해룡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옹기를 굽는 가마가 있어서 점말이 되었다고 한다.

기와골앞고래

기와골 앞에 있는 논 고래이다. 마을 아름을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너더리벌

진솔모루 서남쪽에 있는 들이다. 넓은 들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중보, 하보, 당모루보(감바위보)등의 물이 이 들로 흘러든다.

모래재앞고래

모래재 앞에 있는 들이다. 마을 이름을 붙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상시막골앞고래

상시막골 앞에 있는 논고래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들지벌

해룡 앞에 있는 들이다.

전나무골

모래재 앞의 들이다. 옛날에 전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와골등

기와골에 있는 등성이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긴등

상시막골에 있는 등성이이다. 모양이 길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논들이다.

복숭아골

용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복숭아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복숭아골이 되었다.

절안산

큰쉼터 서쪽에 있는 산이다. 절이 있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절터골

용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절터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큰쉼터

복숭아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나무꾼들이 많이 쉬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홍장구니

절안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홍씨 장군이 피신하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공터

해룡 서남쪽에 있는 편편한 산록이다. 나무꾼들이 쉬면서 공을 차고 놀던 장소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룡산

2,000여 년전 큰 홍수가 나서 이 산에 살던 이무기가 그 물로 인하여 용이 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조개 껍질이 많다.

너러바위

해룡 위의 점말 뒷산 입구 산기슭이다. 지형이 넓어서 생긴 이름이다.

개울, 보
동다리 개울

동다리에 있는 개울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첫개구리장

오지재고개 뒤턱거리 바로 위에 있는 개울이다. 고개를 올라가다가 첫 번째 개울이라고 하여서 생긴 이름이다.

중보

당모루보 밑에 있는 보이다. 위아래가 보가 있어 중간에 있는 보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기타
능모퉁이

진솔모루에서 제청말로 들어가는 모퉁이다. 약봉 서성 선생묘도 이 모퉁이를 통해서 가게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수박재고개

설운리에서 동교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연골고개

오리골에서 영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골짜기가 길고 영골로 넘는 고개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구밭

상시막골 서쪽에 있는 밭이다. 장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청말다리

제청말 앞에 있는 다리로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르너미고개

오지재고개 서쪽에 있는 고개이다. 동두천을 빨리 질러 갈 수 있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생긴 이름이다.

춘천다리

기와골에 있는 다리이다. 이곳에 큰 오리나무가 2그루 있었다. 해마다 이 오리나무에 초파일 날 그네를 매고 부녀자들이 그네를 뛰던 곳이어서 추천(鞦韆)다리가 춘천다리로 변음된 것이라 생각된다.

오지재

해룡에서 동두천시 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큰오지개고개, 작은오지재고개가 있다.

먼우물

전나무골에 있는 우물이다. 꽃두둑이 사람들이 멀리까지 와서 길어다 먹던 우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수응뎅이자리

진솔모루 뒤에 있는 논고래의 웅덩이다. 이 부근에서는 물이 끊이지 않고 제일 잘 나온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감바위

오리골 마을 끝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장등이

제청말에서 오리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산 등성이가 말 장등이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뒤턱거리

오지재고개 중간 지점이다. 올라가는 턱이 가파르고 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동교동(東橋洞)

1912년 행정구역으로 포천군 서면(西面) 동교리(東橋里)이다. 장마가 지면 물살이 세어서 다리가 잘 뜨므로 뜬다리, 동다리 또는 동교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지방행정 구역 개편 때 서면(西面) 목동리(木洞里) 전역과 외소면(外所面)의 초동교리(初東橋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교리(東橋里)라 하였다. 1937년 서면이(西面) 포천면(抱川面)으로 개칭되어 그 관할이 되었고 1979년 포천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어 포천읍(抱川邑) 관할이 되었다. 2003년 포천군이 시(市)로 승격되어 포천읍이 2개 행정동으로 분동되면서 동교동(東橋洞)이 되어 선단동(仙壇洞) 관할이 되었다.

마을
동다리, 원동교

이 마을 동쪽에 설운리와 통하는 커다란 다리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동다리 또는 원동교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골

벌말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나무가 무성하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벌말

동다리 서북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다. 벌판에 있는 마을이어서 벌말이 되었다.

복쟁이

동다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새터

벌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말

동다리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양지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양지말이 되었다.

뒷동다리

동다리 뒤쪽에 있는 벌판이다. 마을 뒤에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굽들

새터 서남쪽에 있는 들이다.

당모루

띵게보 동쪽에 있는 들이다. 신당이 있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말앞들

동다리 앞에 있는 들이다. 마을 앞에 있는 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밑

월미고개 앞에 있는 들이다. 월미고개 밑의 줄인 말인 월밑이 원밑으로 변음된 것 같다.

능골

벌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 아기능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석장골

평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개울 바닥에 돌이 쫙 깔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너린골, 너른골

벌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가 넓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먹쟁이

벌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골짜기의 바위도 검을 뿐아니라 산세가 험하기 때문에 낮에도 컴컴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삼박골

새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이다. 이곳은 3골짜기의 물이 합류하는 곳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알미동산

나무골 남쪽에 있는 조그만 산이다. 모양이 알처럼 생겨서 지은 이름이다.

큰삼박골

삼박골의 큰 골짜기이다.

됨박골

벌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 안에 됨박같이 생긴 밭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답골

동다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빨래를 했던 곳이라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서답은 빨래라르 뜻이다.

영골

양지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시위골

나무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정씨의 묘가 있었는데 그 후손이 무장이 되어 광릉 참배를 하는 왕을 시위 소리를 치면서 호위하였다고 한다. 능 참배를 마치고 왕에게 멀지 않은 곳에 선조의 묘가 있으니 잠깐 참배케 해달라고 하여 승낙을 받았다. 왕은 또한 신하를 보내어 사실 확인을 하여 보니 자기 조상의 묘 앞에서 큰 소리로 시위 소리를 치고 있었다. 왕이 대로하여 당사자를 귀양 보내고 그 묘의 석물은 논고래에 묻었다고 한다. 그 후로 정씨가 시위를 부른 곳이라하여 정시위골이 되었다고 한다.

제비산

나무골 동쪽에 있는 산이다. 모양이 제비를 닯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윗방골

나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개울, 보
뒷동다리개울

뒷동다리 앞에 있는 개울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른개울

동다리 앞에 있는 개울이다. 장마철에만 물이 흐르고 항상 말라 있는 개울이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샛보

마을앞보 동쪽에 있는 보이다. 보와 보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보(下洑)

중보 아래에 있는 보이다. 보 아래에 있는 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모루보

당모루 밑에 있는 보이다. 지명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장승거리보

장승거리 옆에 있는 보이다. 장승거리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타
고구메고개

벌말에서 나무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구씨 할머니의 묘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교회묘

회암고개 밑에 있는 천주교회의 공동 묘지이다. 교회의 묘지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너러바위

목동 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가 넓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우배미

말앞들에 있는 논이다. 이 논에 큰 바위가 밖혀 있어서 생긴 이름인데 바위를 뽑아 버렸더니 곡식이 잘 되지 않아서 있던자리에 다시 놓았다고 한다.

새터고개

동다리에서 새터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새터로 넘는 고개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렁자리논

앞들에 있는 논이다. 수렁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영버들자리

동다리 북쪽에 있는 논이다. 수양버들이 많았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식논

띵게에 있는 논이다. 모양이 어식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어식은 좀 삐뚤어진 모양을 뜻하는 것 같다. 또는 임금님이 내려주신 논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논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외배미

마을앞보 옆에 있는 논이다. 길 옆에 외따로 떨어진 토질 좋기로 이름난 논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월미고개

벌말에서 소홀읍 송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장림고개(長林)

동다리에서 동두천시 탑동 장림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장림으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승거리

당모루 동쪽에 있는 길이다.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시위고개

나무골에서 정시위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정시위골로 넘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암고개(檜巖)

새터에서 양주시 희천면 회암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회암리로 넘는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며 호얌고개 라고도 부른다. 6·25이후 군인들이 두 번째로 넓혀 뚫은 길이라 하여 투바이 고개라고도 부르고 있다.

봉화뚝

회암고개 정상이다. 옛날에 봉화를 올리던 곳이어서 봉화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숫돌고개

장림고개의 중간쯤이 된다. 숫돌(낫, 칼 등을 가는 돌)이 많이 난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